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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치료기/ADHD

26살까지 ADHD를 자각하지 못했던 이유

by 내면고고학자 2023.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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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들과 힘듦을 비교해 볼 생각은 못해봤다. 

그냥 원래 안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독한 편이었다. "안 되는 게 어딨어 죽어라 하면 다 되는 거야"를 뭔가 당연히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이 생각이 잘못된 생각인 걸 이해만 한다. 근데 솔직히 어릴 때는 주어지는 업무의 양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죽어라 하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게 그렇지 않았나 했다... 일단 좋은 대학에 가라고 하잖아..) 근데 어른이 되자마자 쉽지 않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 생각을 멈추지를 못하기 때문에 아직 자괴감을 무시할 수 있는 단계는 오지 못한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무언가를 이루는 게 원래 힘든 줄 알았다. 남들도 이만큼 힘들게 모든 걸 이뤄낸 줄 알았다. 책 한 장 읽기도 다들 나처럼 힘든 줄 알았다. 다들 책을 읽다가 다른 생각이 무작위적으로 떠오르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 좀 놀랐다. 당연히 그런 걸 비교해 볼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근데 아마 그냥 내 가벼운 추측으로는 내 세대부터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원래 주변이 산만하지 않은 친구들도 집중하기 더 어려운 세대가 되면서 내 병을 구별하기가 더 힘들었던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2. 남들이 정해준 삶을 살기 좋은 나라다. 

취업 전까지 내 삶에서 우선순위를 구성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우선순위대로 하지 않아도 나에게 오는 불이익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일을 이렇게까지 분류하지 못하는 지를 회사 가서 처음 알았다. (물론 지금은 퇴사해서 다시 무지렁이처럼 살고 있다.) 이전까지는 조건이 다 정해져 있어서 우선순위를 그대로 따라 하면 됐다. 그땐 왜 그렇게 잘 순응했는지 모르겠지만, 해오라고 하면 다 해오긴 했다. 수행평가 같은 것도 쉬는 시간에 대충 해서라도 꼭 냈다. 일을 미뤄서 큰일 날 정도로 날 아무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늘 중간에 과정을 남이 만들어줘서 업무가 과적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리고 대개 그렇듯이 학교에서 주는 과제를 쌓아놓는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그냥 성적이 낮을 뿐... 근데 자취할 때 청소조차 혼자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잘못된 걸 느꼈다. 그전까지 좀 부끄럽지만, 어렸을 때 방 청소를 대부분 어머님이 해주셨다. 자취를 하면서 내 방이 초토화되는 걸 처음 알았다. 엄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3. 어렸을 때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행동증세가 없었다.

어렸을 때 딱히 문제가 될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수업 시간에 뛰쳐나가는 짓도, 누군가에게 충동적으로 욕을 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따돌림을 당하긴 했는데, 내가 추측하는 가장 가능성 있는 이유는 친한 친구랑 싸웠는데, 그 친구가 친구들한테 잘했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내 기억으로 예측하기엔 딱히 눈에 띄는 ADHD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때도 5초마다 내 머릿속에 라디오가 채널이 바뀌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문제인 걸 알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20대까지도 늘 문제인지 몰랐다. 사실문제는 있었겠지만, 스스로 알아채기가 너무 어려운 증상이었다. 어렸을 때의 증상도 지금과 별 다른 건 없었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정말 말 그대로 라디오가 5초씩 채널을 바꾸고 있다. 근데 그게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되어서 어떤 생각을 5시간 고민하기도 하고, 어떤 생각은 5초만에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수업시간 내내 딴생각하는 것 빼고는 딱히 다른 문제가 없었다. 

 

4. 게임은 원래 중독증상이 많으니까...?

대학을 가서 처음으로 게임이라는 걸 해봤다. 성별이 여자이기도 했고, 공부를 솔직히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다. 내가 말하면 신뢰성이 없겠지만, 공부를 진짜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래서 게임을 처음으로 대학 가서 접해봤다. 근데 나는 내가 이렇게 무언가를 오래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PC방에 5만 원씩 넣어놓고 밤새고 수업 제치고 2일 내리 게임하는 경우가 진짜 많았다. 나는 그게 중독인지 몰랐다. 어쩔 줄 모를 정도로 게임을 해야만 했다. 근데 게임은 원래 재밌는 거라는 생각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잘 자제하지 못하니까 나도 그 정도인줄 알았다. 다들 원래 이렇게까지 조절이 힘든 줄 알았다. 그리고 대학교 저학년이라 그런 게 마치 자랑처럼 통하던 시기였어서 더 그런 것 같다. 그 어쩔 줄 모르는 게임을 하는 증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땐 이게 나만 조절할 수 없다는 걸 몰랐었다. 지금은 약 먹고 게임을 켜지도 않는다. 그때는 한 번 켜면 최소 13~14시간 동안 멈추질 못했다. 진짜 내가 졸려서 잠에 빠질 때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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