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전혀 위로받지 못했다.
사실 처음은 분노였다는 게 더 맞다. 나는 효율성과 성장강박에 절여져서 성장했다. 사실 한국에서 자라면 다들 그렇게 되지 않을까? 미라클 모닝을 다들 부지런하고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사람들의 습관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자신의 간판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이런 강박 하나 없는 게 더 이상하다고 느낀다. 특히나 나는 이런 강박이 더 심했다. 뭐랄까 효율성이 없는 삶을 살면 내가 쓸모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내가 처음 ADHD를 정확하게 진단받았을 때 느낀 첫 감정은 분노였다. 하필 내가 왜 뇌에 문제가 있어서 효율성이 별로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26살에 이 성인 ADHD를 진단받으면서 26년을 손해 봤다는 느낌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심리상담하면서 강박에서 조금은 벗어난 상태다. 강박은 겪어보면 알겠지만, 강박이 이기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뻤다. 그럼 내 효율성을 올려 더 효율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내 정신병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다시 느끼고 있다. 내 성장 강박이 거의 미친 시기였구나 싶다. 나는 그 사이에서 내가 원래 이런 애라는 위로는 스스로에게 주지 못했다. 물론 그건 지금도 노력을 해야 겨우겨우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나 같은 느낌이 든 사람에게 너무 힘들지 않게 위로를 해주고 싶어서 써보는 글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저 상태였기 때문에 알고 있는 거기도 한데, 저 상태에서는 타인의 위로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언젠간 읽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끄적여본다.
한 줄 요약: 26년 손해 봤다는 마음 때문에 화나고, 약을 먹으면 효율성 극대화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쁘기도 했다.
2. 그래도 위로받아야만 한다. 그래도 우리는 자기를 연민해야 한다.
내가 이 병을 겪으면서 느낀 건, 자기 연민이 없으면 나만 괴롭다. 난 처음엔 나를 위로하지 못했지만, 약의 부작용을 겪고 나서 다시 한번 느낀 건, 나는 나를 위로해야 한다. 그래야 길게 인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만 인생을 길게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길게 살아야만 한다. 정말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죽어야 할 이유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유는 모르지만 길게 살기로 마음은 먹었다. 그렇다면 이런 피폐한, 하루도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정신으로 길게 살 수는 없다. (사실 나도 아직 정신병치료기에 있어서 이 글의 내용이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다. 이해해줬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괜찮은 정신으로 살고 싶어졌다. 특히나 ADHD를 앓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더더욱 관대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실수하고 매일 허둥대는 나를 채찍질 안 하고 어떻게 보고만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앓고 있는 것을 적어도 너그럽게 봐야 한다. '왜 하필 내가 ADHD를 앓고 있을까?'라는 질문보다는 ADHD가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많은 일상을 우리는 원망하게 된다. 정신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나를 잘 연민해야 한다. 효율성 관점에서 자신을 원망해 온 ADHD환자라면 자기 연민 혹은 자기 합리화를 진짜 극도로 거부할 수도 있다. 내가 하기엔 주제넘은 말이지만 그래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 속에서 절여지면 너만 손해다. 너만 고통스럽다. 어차피 내가 나를 연민하든 안 하든 내 효율성은 똑같다. 그럴 바엔 마음이라도 편해지자..'. 어차피 약을 먹어도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효율성을 조절할 수 없고, 그렇게까지 약을 먹으면 어디서든 부작용이 터진다. 우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걸 먼저 배워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효율성을 내기도 전에 터져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효율성 측면에서 날 바라보면 ADHD란 질병은 평생 덫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효율성 측면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물론 26년간 절여져 와서 내려놓으려면 아직 내려놓을 강박이 한참 남았다. 하지만 내려놓는 연습을 하면서 나는 점점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나는 앞으로 ADHD탓을 하면서, ADHD로부터 위로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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