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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치료기

우울증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나의 우울 증상

by 내면고고학자 2023.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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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겨울 고질병

pixabay_Hans

계절성 우울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는 겨울이 다가오면 훨씬 더 우울해진다. 사실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것은 똑같은 데, '내가 해가 지기 전까지 해낸 것이 몇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뒤덮어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보면 내 뇌는 되게 멍청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멍청한 게 맞다... 아무튼 요즘은 그래서 우울증 약을 엄청 열심히 챙겨 먹고 있다. 꼬박꼬박 아주 열심히 말이다. 뭔가 우울증 약도 안 먹고 인생에 대해 회의감이 가득한 채로 황폐화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너무 모자라 보여서 그냥 약을 잘 먹기로 다짐했다. 약을 진짜 잘 먹고 있는데도 여전히 왜 사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 질문은 끝이 없다는 걸 알고 답은 오로지 죽음 밖에 없다는 걸 아는데, 나는 살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ADHD라 생각을 멈출 줄 모르는 건지, 여전히 오늘도 늘 이 생각을 공장처럼 찍어내고 있다. 진짜 싫다. 그만 생각하고 싶다. 

 

 

2. 내가 죽음을 선택하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

몇 년 전에 사촌 오빠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사실 나는 집안에서는 넉살 좋은 성격도 아니고, 먼저 가서 인사하는 성격도 아니라서 사촌 오빠랑 친하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 사촌 오빠가 죽은 건 충격적이었지만 슬프진 않았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코로나가 한창 유행일 시기라 장례식장에 직원분들이 9시면 퇴근을 하셨었다. 그래서 가족인 우리가 음식을 나르고, 정리를 도와드리곤 했다. 나와 사촌들은 첫날 조문이 거의 마무리되어 차를 타고 주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장례식장을 나왔다가, 차에 담요가 남는 걸 보고 전해주고 싶어서 나와 사촌 언니만 다시 장례식장에 들어갔다. 우리는 그 담요를 끝내 전해주지 못했다. 우리가 간 줄 알고 이제야 맘 편히 우시는 목소리가 너무 슬퍼서, 아들을 잃어버린 부모님의 목소리가 너무 맘 아파서 위로조차 해드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다시 돌아서 나왔다. 그 뒤로 내가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효도는 적어도 먼저 죽지 않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사실 죽지 못해서 산다라는 선택지는 없다. 나는 산다는 게 기본 선택지다. 근데 죽고 싶다는 느낌은 늘 든다. 부모님만 안 괴로우실 수 있다면, 무의 존재로 돌아가고 싶다. 그냥 태어나지 않기 버튼을 누가 만들어 줬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가능할 걸 알아서 그냥 상상만 해봤다 상상만,,, 상상은 할 수 있으니까... 아 물론 나는 우울증 완치하고 건강해질 거다. 이 기분은 잠깐일 거라고 믿지 않으면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우울증 약 꾸역꾸역 먹어가면서 나아갈 거다. 

 

 

3. 허무주의의 굴레

다음 생에 태어나면 그냥 무생물로 태어나고 싶다. 

 

내 우울의 주된 증상의 시작은 허무주의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이유도 목적도 없다. 굳이 왜 나는 이 고통을 마주하면서 버텨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다. 늘 허무함이 가득하다. 사실 나는 세상에 이유 없이 던져진 게 맞기에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맞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나는 마치 메마른 사막을 걷는 느낌이다. 뭐랄까 끝이 없는 길인 걸 알고, 오아시스를 찾을 수 없이 여기서 지쳐 쓰러져 죽을 걸 아는 데 계속 여기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느낌이랄까? 나는 의외로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냥 살고 싶은 명분이 필요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생각이 들 때는 오히려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 치료가 시급해진다. 의외로 아무것도 안 할 것 같지만, 나도 모르게 이 기분이 너무 끔찍해서 미쳐 날뛴다. 우울증 약을 꼬박꼬박 먹고, 굳이 굳이 카페에 가고, 새벽에 울고 싶어도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 지금도 우울해 미칠 거 같아서 글을 꾸역꾸역 쓰고 있다. 방금 전에 약도 먹었다. 나는 우울증 환자에게 한국만큼 좋은 나라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울증 환자를 만드는 데에도 좋은 나라지만,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데도 좋은 나라같기도 하다. 24시간 카페가 없었으면 나는 집에서 울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24시간 카페 최고다. 여전히 나는 카페에 앉아서 왜 살아야 할까를 3시간째 고민 중이다. 그만 생각하고 싶지만, 그만 생각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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