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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상들

게으르다는 죄책감

by 내면고고학자 202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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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내가 느껴온 사랑의 무게

나는 오래전부터 부모님의 사랑은 공짜지만 공짜가 아닌 것처럼 느껴왔다. 이성으로는 그냥 주시는 사랑이라는 걸 아는데, 감정으로는 전혀 그렇게 인지하는 게 불가능한 것만 같다. 본능은 이 사랑을 받아서는 안될 것 같다고 느끼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아니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담스럽다. 그리고 무겁다. 사랑을 사랑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를 내 자존감이 거부하고 있다. 이건 아주 오래전부터 느껴왔던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정말 사랑해 주신다. 근데 그게 늘, 아니 내가 인지하기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 평생을 괴롭히고 있기도 하다. 아주 잔잔하게 나를 괴롭힌다. 뭔가 돌려줘야만 할 것 같다. 이 사랑이 나라는 존재에게 너무 과분해서 먹어서 소화되지 않고 자꾸 체하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부모님이 주시는 사랑의 누적 무게를 측정하고 있다. 

 

 

 

사랑의 무게를 측정하기 시작한 날

아마 시작은 내 초등학교 시절 따돌림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따돌림을 오래 당했다. 내 기억으로는 한 8년 정도 당한 것 같다. 사실 애들이 직접적으로 와서 따돌린 건 아니었다. 그냥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하면서 웃고,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그런 정도였다. 직접적인 물리적인 괴롭힘은 없었다. 그래서 뭔가 더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하니까 집에 가서 이 이야기를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딱히 내가 해결하고 말고 할 게 아니고 그냥 나만 버티면 되니까, 그래서 더 이야기를 하기가 죄송했다. 이걸 쓰면서 이성은 왜 죄송하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본능은 말을 못 하는 그 당시의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근데 엄마 아빠 바쁜데 굳이 속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외로웠던 것 같다. 솔직히 어려서 그때는 감정을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지독하게 외로웠던 것 같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반에서 애들이 웃긴 이야기를 할 때, 나도 귀가 있으니까 들려서 조용히 웃음이 터지면 반 아이들이 나를 쳐다봤던 게 너무 서러웠다.)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집에서는 사랑 받으니 그 온도 차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안에서 썩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따뜻한 사랑을 표현할 때마다 나는 그 무게를 차곡차곡 쌓아서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아올리기 시작하니 지금은 어떻게 다시 돌려줘야 하는지는 나에게 아주 큰 문제가 되었다. 

 

 

 

 

사랑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생기는 일

사랑이 무거워져서 힘든 최대 단점은 나에게 강박이 생긴다는 것이다. 모든 걸 부모님의 노력과 비교한다. 우리 부모님은 자영업을 하셔서 쉬는 날이 없다. 지금은 돈에 허덕이는 삶이 아닌데도 일을 하지 않으면 늙는다고 일을 지속하고 계신다. 나에게는 신비한 재능(버릇)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에 너무 큰 양심과 너무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쉬는 모든 순간에 죄책감이 생긴다. 게임하는 것마저 꼭 리뷰 글을 올려서 명분을 만든다. 무언가를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엄청나다. 근데 또 그렇다고 엄청 부지런하지도 않다. 그냥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데 취미를 들인 것 마냥 생각이 멈춰지지가 않는다. 물론 ADHD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을 멈춘다는 개념이 너무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모님의 모든 반응에 예민해진다. 나는 내 기준으로 생각하기에 부모님이 더 많이 쉬었으면, 더 많이 취미를 즐기셨으면 한다. 그래서 관성 때문에 새로운 걸 시작해보지 않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같이 행사도 가고, 같이 집에서 요가도 하고, 영상 편집도 가르쳐주려고 한다. 근데 이 과정을 하면서 내 스스로가 벅찰 정도로 힘든데, 그리고 그 상황에서 예민해져서 서로 싸우기까지도 하는데도 이걸 멈추질 못한다. 빨리 돌려줘야 할 것만 같아서 안절부절 한다. 사실,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는데 죄책감을 느낀다. 또 사랑을 돌려주는 걸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조차 죄책감이 생긴다. 엄마는 그래도 취미생활을 즐기고 친구들도 만나고 본인의 삶을 조금 즐기기 시작하셨는데, 아빠는 아직 그런 게 조금 거리감이 있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아빠의 전화를 안 받는 게 너무 미안하다. 아빠는 나를 키우느라 취미 만드는 법도 까먹었는데, 나 혼자 좋아하는 일 하고 취미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 때문인 것 같다. 뭐 아무튼 복잡하고 무겁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 

사실 이 글을 쓰기 전부터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이 무게를 섬세하게 측정해서 똑같이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상담하면서 오랫동안 이야기 해왔다. 만약 부모님이 주신 사랑을 내가 사랑을 무겁게 느낀다고 생각하면, 부모님의 입장에서 어떤 마음이겠냐고 물어본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내게 강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우리 부모님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정말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으면 하실 것이다. 근데 이성은 그렇다고 계속 생각하는데, 본능은 쉽지가 않다. 본능은 계속 무게를 측정하고 나를 짓누른다. 부모님에 대한 내 사랑이 무게에 짓눌려 억지로 주는 사랑이 아니기 위해 이 강박을 조금은 벗어나야 한다고 다짐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 거다. 근데 여전히 쉽지는 않다. 아니, 너무 어렵다. 

오랜만에 글 쓰면서 운 것 같다. 우니까 좀 속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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